기억의터를 아시나요? 기억의 터 1년 그 약속의 날

Date2017.08.29 23:48

 

 

 

8월 26일 토요일 오후 5시. 남산공원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에서 1주년 기념행사가 열렸습니다. 기억의 터는 나라를 빼앗긴 슬픈 역사현장인 통감관저터에 마련되어 있는 곳인데요. 지난해 8월, 약 2만 명이 3억 5천만 원을 모금해 조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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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기억의 터에는 <대지의 눈>, <세상의 배꼽> 두 작품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 1주년을 맞이해 위안부의 역사를 알리기 위한 부스와 알림판이 설치되었습니다.

 

 

 

나만의소녀상 만들기, 희망돌탑쌓기, 페이스페인팅, 할머니그림 퍼즐 맞추기, 상징나비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행사가 열렸는데요. 다섯개 이상의 체험을 하고 스탬프를 받아오면 기념품과 위촉장을 증정했습니다.

 

 

 

이번 행사에는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박원순 서울시장, 기억의 터 최영희 추진위원장,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 서울시의회 박양숙 보건복지위원장, 한명희 여성특별위원장 등이 참석했습니다.

 

 

특히 이번 행사는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 홍보대사인 배우 한지민이 참석해 주목을 받았습니다. 위안부 문제가 단지 피해자의 문제가 아니라 나 자신, 우리 모두의 역사임을 인식하고 이를 알리고 해결에 함께 나서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미래세대 위촉장 전달식과 할머니와의 약속 낭독에 이어 커다란 나비가 펼쳐지는 퍼포먼스를 끝으로 행의 막을 내렸습니다. 행사는 끝이 났지만 해결되지 않은 위안부 할머니에 대한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기억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원문기사 : http://elena.pe.kr/221085102181

 

서울미디어메이트 박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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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할머니 생전에 진정어린 사과를 요구한다!

서울미디어메이트2기 임황근

Date2017.08.29 22:23

ttp://pomnanda.co.kr/221084963389

지금으로부터 107년 전 8월 29일은 일제가 강제로 체결한 한일 합병조약을 공포한 날이자
국권을 상실한  경술국치(庚戌國恥) 치욕의 날입니다
일본이여 들어라! 위안부 할머니 생전에 진정 어린 사과를 요구한다!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는 일제가 한일 합병 조약을 체결한 남산 통감관저 터에
1년 전 2만여명이 모금으로 조성된 곳으로
그동안 2천명의 시민이 방문하여 돌아가신 위안부 할머니를 기리고 인권과 역사교육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이렇게 기억의 터가 조성된지 1년이 지났고 
  돌아가신 위안부 할머니를 기리고 일본의 진정 어린 사과를 요구하는 뜻에서 1주년 기념식이 열렸습니다

 

 

 

기억의 터 1주년 기념식에는 위안부 피해자(김원옥 할머니, 김복동 할머니)가 참석해 주셨습니다
이날까지 총 살아계신 위안부 할머니가 총 37분이셨는데
하상숙할머님이 어제 별세하셨습니다(이 자리를 빌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제 생존해 계시는 위안부 할머니는 36분밖에는 안 계십니다
부탁드립니다 일본의 사과를 받는 그날까지 살아계셔주기를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 서울시의회 박양숙 보건복지 위원장

한명희 여성특별위원장, 기억의 터 최영희 추진 위원장들도 참석해 주셨지만
무엇보다도 눈길을 끄는 건 기억의 터  홍보대사로 참석한 배우 한지민이었습니다
평소 개념 있는 여배우라는 소리를 들었는데 2시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자리를 지키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특히 13세에 만주로 끌려가 '가수'의 꿈을 이루지 못했던 김원옥 할머니가
음반을 발표했다는 소식과 함께 고향의 봄을 제청해 주셔서
오히려 위로를 받는 시간이 아니었나 합니다

 

 

 

마지막에는 아픔과 상처를 딛고 새 희망을 향해, 평화를 향해
평화의 나비가 날아오르는 퍼포먼스 행사를 통해 기억의 터 행사에 참여한
모든 시민과 함께하는 시간이 되어 우리 모두가 위안부 할머니의 문제를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다짐이 더욱 단단해졌다고 믿습니다 

 

 

 


지난 정권에 의해 당사자들의 의견 없이 일본과 합의를 본 것은 우리의 뜻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위안부 할머니들이 원하는 것은 금전적인 보상 문제가 아닙니다
단지 강제로 동원한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를 바랄 뿐

 

일본이여 위안부 할머니 생전에 진정 어린 사과를 요구한다!

 

 

 

서울미미어메이트 임황근

http://pomnanda.co.kr/221084963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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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 1주년 기념행사

기동닷컴

Date2017.08.29 00:52








지난 8월 26일 토요일,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에서 1주년 기념행사가 열렸습니다.


2016년 8월 29일 조성된 이곳은

2만여 명의 모금으로 설립된 곳입니다.


경술국치일을 하루 앞두고 진행됐던 행사,

<기억하는 사람들> 239명도 함께했습니다.


239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된 할머니 숫자입니다.

이들과 같은 239명의 <기억하는 사람들>



위안부 문제가 피해자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역사임을 알리고 있습니다.


위안부 관련 체험부스가 열렸습니다.

다양한 프로그램 함께하며 위안부 역사를 배웁니다.



나만의 소녀상, 희망돌탑 쌓기 등

피해 할머니를 추모하고 기억합니다.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

길원복 할머니가 참여했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모두의 공감을 이끌어냅니다.

이 역사를 절대 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기억의 터는 남산공원 통감관저터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개인, 단체 방문을 통해 많은 이들이 방문했지요.


일본 제국주의 역사, 기억의 터 주변 인권 탄압의 현장을 보며,

일본의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는 날을 바라봅니다.



우리들 나이에선 위안부 할머니의 마음을 잘 알지 못합니다.

지금 살아가는 현실에선 이러한 비극이 현실적으로 와닿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렇기에 이러한 '기억의 터' 같은 공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곳을 통해 과거의 아픈 역사를 인지하고, 잊지 않아야 합니다.



위안부 역사를 쉽게 접하고 기억할 수 있는 대중 콘텐츠 제작 또한

같은 맥락에서 조속히 추진되면 좋겠습니다.



http://blog.naver.com/lkd8659/221084348441


서울미디어메이트 2기 이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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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기억의 터 1주년 기념행사_남산공원 통감관저터

희망샘최현정

Date2017.08.29 00:03

위안부 할머니 기억의 터 1주년 기념행사
기억의 터 1년, 그 약속의 날

 

 

 

8월 26일 토요일 오후 4시,
남산공원 통감관저터에서 특별한 행사가 열렸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마련된
『기억의 터』1주년 기념행사였습니다.

 

 

이토록 하늘이 맑고 화창한 날이었네요.

 

 

남산 자락에 위치한 통감관저터는 일제침략기 통감관저가 있었던 곳으로
1910년 8월 22일 경술국치 조약을 조인한 현장이라고 하는데요.
역사적 비극의 현장이기도 한데 이곳에
위안부 할머니들을 추모하기 위한 기억의 터를
마련했다는 것이 의미있습니다.

 

 

 

'대지의 눈'에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 247명의 성함과 할머니들의 증언을 시기별로 새겨져 있습니다.
故김순덕 할머니의 그림 <끌려감>이 함께 새겨져 있는데 이 그림이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픈 과거를 더 슬프게 나타내고 있는 듯 합니다.

 

 

이날은 다채로운 행사가 마련되어 1주년을 기리는데 큰 의미를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
기억나비 모빌을 만드는 모습입니다.

 

 

위안부 소녀상을 만들어보기도 합니다.
전문가용 클레이로 소녀상을 만드는데 매무새가 고와야 예쁜 인형이 나오겠네요.

 

 

17:00시부터 기억의 터 1년, 그 약속의 날

기념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이 행사에 참여해 주신 분들은 각계각층의 인사와
위안부 피해 할머니 숫자와 같은 수의 홍보대사들입니다.

이 행사에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가 자리해 주셨습니다.

김복동 할머니, 연세가 많으심에도 불구하고
큰 목소리를 내 주셨는데요.
꽃 다운 나이에 위안부로 한스러운 세월을 보냈음에도
그 한을 풀지 못하고 있어 원통하기 짝이 없다 하셨습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기리기 위한 이 추모공원에서
역사의 한을 되새김질하고 오래 기억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가져봅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숫자와 같은 기억하는 사람들.
그들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 국민이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배꼽에서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합니다.

 많은 이들이 함께
나비를 흔들며
위안부 할머니들을 기렸습니다.
가슴 뭉클한 순간... 결코 반복되지 않을 역사입니다.
치욕이 치유되기를 고대해 봅니다.

 

 

더 자세한 이야기를 확인하고 싶으시다면...

 

http://blog.naver.com/wcareer/221084197496

 

위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서울미디어메이트 2기 최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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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공원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기억의 터

sweetieRomy

Date2017.08.28 22:58

지난 26일 남산공원 통감관저터 앞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기억의 터 조성 1주년 기념행사가 열렸다. 지난해 이곳에 기억의 터가 마련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한번 찾아가 보겠노라 했건만 1주년 기념행사가 있는 날에서야 걸음을 한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라는 말 앞에 1년간의 무심함이 부끄럽게 느껴지는 하루다. 소녀가 감당하기엔 시대가 준 시련은 너무나 가옥 했다. 그리고 새로운 시대는 그들을 보듬어주기보단 숨기기에 급급했다. 진심 어린 사과를 기다리던 소녀들은 하나둘 생을 마감하고 그 뒤를 기다리는 소녀들은 소망한다. 소녀들은 70년 넘게 미뤄온 사과와 짓밟힌 자유와 인권을 후대 사람들이 기억하길 바란다. 아픈 역사를 기억하며 더 이상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지난해 통감관저터에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기억의 터가 마련되었다. 통감관저터는 일제강점기 이완용이 일본과 한일강제병합조약을 체결하고 나라를 팔아먹은 역사적인 장소다. 이곳에 조성된 기억의 터는 의미가 남다르다. 주권을 잃은 나라의 소녀들은 전쟁터로 끌려가 일본군 위안부가 되어 처참한 생활을 하게 된다. 그들이 벌써 90이 가깝거나 그조차 훌쩍 넘은 할머니가 되었다. 진심 어린 사과 한마디 받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소녀가 있는가 하면 아직 그 희망을 놓지 않은 소녀들이 있다. 하지만 그 수가 줄어듦에 세월은 속도를 더한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 생을 기억하기 위해 기억의 터 1주년을 맞이해 많은 서울시민들이 기억의 터를 찾았다. 그 기억을 다짐하고자 각종 이벤트로 기억의 조각을 하나씩 만들어보는 시간이 본 행사 전 주어졌다. 다양한 방법으로 위안부 할머니들을 기억하려는 몸짓이 기억의 터를 가득 메웠다.




무더운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행사장을 찾은 시민들이 많았다. 이번 행사에는 몇몇 위인부 할머니들이 더 오시기로 되어있었으나 건강상의 문제로 김복동 할머니와 길원옥 할머니 두 분만 참석하셨다. 그리고 박원순 시장과 홍보대사 홍지민 그리고 많은 인사들이 이날을 기념하기 위해 이곳에 모였다.


아직 공식적인 사과를 미루고 있는 일본 정부에 대해 김복동 할머니의 연설이 있었다. 거동이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다시는 이 나라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맘에 이 자리를 빛내주셨다. 이제 몇 분 남지 않은 위안부 할머니들이 사과를 받고 편안하길 기원하는 박원순 서울시장. 위안부 할머니들을 적극 후원한 분들에 대한 공로상 수여 시간도 가졌다. 홍보대사로 참여한 배우 한지민씨가 함께 해 자리가 더욱 빛났던 것 같다. 길원옥 할머니 옆에서 할머니를 챙기는 모습이 무척 인상 깊었으며 앞으로 그녀의 활약이 더욱 기대된다. 이날은 가수가 꿈이 길원옥 할머니의 데뷔 무대가 있었다. 할머니와 함께 '고향의 봄'을 제창하면서 소녀 시절부터 할머니가 간직해온 꿈을 이곳에 모인 모두가 함께 하는 뜻깊은 자리가 되었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글귀가 4개 국어로 새겨진 ‘세상의 배꼽’에는 기억의 터 1주년을 맞이하여 커다란 노란 나비 퍼포먼스가 열렸다. 나라를 잃은 슬픔 그리고 나라 잃은 아픔을 고스란히 몸으로 받아내야 했던 위안부 할머니의 이야기는 우리 마음속에서 잊혀서는 안될 이야기다. 이런 일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은 역사를 기억하는 것이다. 기억하지 않은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것을 명심하고 남산공원 기억의 터를 찾아보면 좋을 것 같다. 기억의 터에서는 문화해설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단순히 기억의 터를 다녀가기보단 문화해설사에게 위안부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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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할머니들의 마음에 봄날이..

2기박순희

Date2017.02.25 18:39

 

 

2월 22일 서울시청 대회의실에는 문서와사진, 증언으로 보는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

사례집 발간에 따른 강연회가 있었습니다.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씨때문인지 강연회에 참석하기 위해 가는 동안

벌써 마음이 숙연해지기 시작합니다.

 

 

대회의실이 있는 3층에 들어서니 온라인으로 사전접수를 한 많은 시민들이

함께하고 있네요.

 

" 할머니들의 마음에도 봄이 오기를"

 

일본군에게 속아서 전쟁터로 끌려가 수많은 고초를 겪었을 할머니들이

고향으로 돌아와서 겪었을 수많은 고통의 시간들..

 

이제는 우리가 힘을 합해서 그분들을 위로하고 응원해줘야 하는 때입니다.

 

그동안 역사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방관자로서 살아온 시간들이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중 현재 생존해 계시는분은 39명..

참으로 마음 아픈 일입니다.

그분들이 살아계시는동안 일본의 진정한 사과로 조금이라도 치유를 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강연회장이 들어서기전 복도에 전시되어 있는 액자들을 살펴봅니다.

 

 

 

 

전시 성폭력 피해여성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나비기금.

 

전쟁의 한가운서 무자비한 성폭력의 피해자가 되어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온 일본군 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은 온 세상에 역사의 진실을 증언하며, 평화와 여성인권을 외치는 당당한 언니가 되었다.

일본 정부로부터 법적 배상을 받으면 배상금 전액을 전시 성폭력 피해여성들을 돕기 위해 기부하겠다는 할머니들의 뜻에 다라 만들어진것이 '나비기금' 이다.

피해자들과 함께 모든 여성이 차별과 억압, 폭력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롭게 날개짓하기를 염원하는 의미를 담은 상징물이다.

 

 

 

희망을 싣고 떠나는 나비의 여정

 

 

 

 

문서와 사진, 증언들을 통해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실상을 더 자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사실들을 생생한 증언으로 접하며 일분군의 만행에 치가 떨렸습니다.

피해자들이 생존해서 증언을 하는데도 사과 한마디 하지 않는 일본의 처사에는 분노감이

치밀어 오릅니다.

 

 

현재 92세이신 김복동 할머니..

불편한 노구를 이끌고 강연회에 참석해 주셨습니다.

 

군복공장에 가서 일하는줄 알고 끌려가 전쟁터에서 고초를 겪으시고 일본 패망후 싱가포르에

버려졌다 합니다.

당신이 겪으신 일들을 지금도 잊지 않고 생생하게 기억하고 고통속에 있는데 사과한마디 제대로 하지 않는 일본정부에 대해 할머니는 울분을 토하십니다.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곳곳에 끌려가신 피해자 할머니들의 피맺힌 절규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때를 잘못 만나서 희생자가 되었지만, 지금 자라는 애들은 절대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의 말씀입니다.

 

한마디라도 사과의 말을...진실한 사과의 말을 듣는게 소원이죠..

 

할머니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절절하게 담겨 있는 글들을 읽어보며 가슴이 또 먹먹해집니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 됩니다.

 

이 치욕스런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기 위해 역사앞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

우리는 힘을 모아야 할때입니다.

 

 

 

 

기억하지 역사는 되풀이 된다고 했습니다.

 

 

http://annasi65.blog.me/220944440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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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시장과 함께한 김복동 위안부 할머니

박경권 리포터박군

Date2017.02.25 18:23

박원순 서울시장과 함께한 김복동 위안부 할머니




2017.2.22(수) 서울시청 대회의실(본관3층)에서 열린 문서와 사진, 증언으로 보는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관련 행사에 다녀왔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 김복동 위안부 할머니등이 참석한 뜻깊은 행사였습니다.





73년이 지난 2017년 현재를 살아가시는 위안부 할머니는 39분 남아계십니다. 앞으로도 그 수는 점차 줄어들겠지만, 여전히 해결된 것은 없습니다. 오히려 현 정부는 일본정부와 10억엔에 '위안부'관련 사항을 합의하였습니다.

행사당일 위안부 할머니 김복동 할머니의 말씀을 들으며, 고개가 숙여지는 것은 부끄러움 이었습니다.

서울시와 서울대학교 인권센터가 공동 주최한 "문서와 사진, 증언으로 보는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 행사 내용을 전하겠습니다.



기사원문 - http://blog.naver.com/classperfect/220943393307

서울미디어메이트 박경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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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와 사진, 증언으로 보는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

Date2017.02.25 15:03

 

 

문서와 사진, 증언으로 보는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

 

지난 2월 22일 서울시청 대회의실에서 위안부 이야기 강연회가 열렸습니다. 서울시미디어메이트 취재의 일환으로 강연회에 참석하게 되었는데요. 이번 강연회는 서울시와 서울대인권센터가 함께 발간한  '문서와 사진, 증언으로 보는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 사례집을 바탕으로 진행됐습니다.

 

 

 

 

 

위안부 할머니 작품 전시회

 

강연회가 열리는 서울시청 대회의실 복도에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작품전시회가 열렸습니다. 그림에는 일본의 제대로 된 사과를 원하는 간절한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흰 소복을 입은 소녀가 칼로 일장기를 찌릅니다. 피가 떨어진 곳에는 한 남자가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서울시의 노력

 

일본군 위안부의 올바른 역사를 알리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위안부 기록물이 유네스코 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도록 서울시가 예산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전국 최초로 일본군 위안부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공간,  남산공원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 도 조성했습니다. 한일강제합병조약이 체결된 식민시대의 시작점인 통감관저터가 한 세기만에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로 거듭났습니다. 뿐만아니라

 

 미국, 태국에 있는 군 위안부 자료를 발굴하여 '문서와 사진, 증언으로 보는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 사례집'을 첫 발간하는 등의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 관리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김복동 할머니의 인사말씀

 

 

강연회 첫 순서로 김복동 할머니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올해 나이 92세 이름은 김복동. 피해자입니다. " 덤덤한 목소리로 말씀을 시작하셨습니다. 

 

"일본하고 우리가 싸우고 있는 것은 큰 돈이 탐나서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너무나도 억울하게 한을 풀지 못하고... 아직까지 일본이 공식적으로 한 번도 사과한 적이 없어요..." 할머니께서는 한 때 말을 잇지 못하셨습니다.

 

 

 

 

박원순 서울특별시장의 인사말씀

 

 

박원순 서울시장도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시장님은 2000년 12월 여성국제 전범법정에 남측대표검사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앞장서오셨는데요. 시민들이 위안부 역사를 바로 알고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제도의 역사에 다가서기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강성현 교수님의 강연이 열렸습니다. 미국과 태국 등의 자료를 바탕으로 침묵을 깨고 일본군 위안부 제도와 역사적 증거를 소개했습니다. 위안부는 중국, 싱가포르, 버마 지역에 이르기까지 조직적으로 동원되었습니다. 한국에는 아직도 위안부 정본 자료집이 없다는 씁쓸한 현실입니다. 중요한 것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연구라고 지적했습니다.

 

 

 

 

 

 

증언으로 듣는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

 

동국대 대외교류연구원 박정애 교수님의 강연이 이어졌습니다. 위안부 연구의 첫 시작증언집을 읽어보는 것부터입니다. "증언을 읽다 보면 위안부 할머니들은 운이 좋아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기를 쓰고 살기 위해 노력한 분들이십니다." 박교수님께서는 피해자들이 겪은 어려움과 치유의 과정을 소개했습니다.


 

 

 

진정한 사과는 미안한 점을 인정하는 것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제대로 된 문제 해결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할머니들의 손을 놓지 않으면 언젠가는 정의는 실현될 것입니다. 혹자는 돈으로 보상해주기로 했으면 됐지 왜 자꾸 문제 제기를 하느냐고 합니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됩니다. 또한 역사에 종지부는 없습니다.

 


서울시미디어메이트 박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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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할머니 마음에도 봄이 오기를~

비회원

Date2017.02.24 12:42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으며,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 된다고 한다. 더 이상 아프고 슬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절대 잊어서는 안된다. 그네들이 제대로 사죄를 할때까지,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가 회복될때까지 멈추지 말아야 한다. 2015년 12월 28일 한일 외무장관 합의라는 어처구니 없는 짓을 저지른 정부, 대체 누구를 위한 나라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고, 소녀상을 지키는 친구들이 있는한, 희망의 촛불은 꺼지지 않을 것이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듯이, 위안부 할머니에게도 따뜻한 봄이 찾아 왔으면 좋겠다. 


서울시와 서울대학교 인권센터가 함께 발간한 <문서와 사진, 증언으로 보는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 사례집과 관련해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첫 강연회에 서울미디어메이트로서 참석을 했다. 



드라마를 보고, 영화를 보고, 할머니들이 직접 그린 그림을 보면, 슬프다 아프다 괴롭다라는 감정이 들지만, 솔직히 잘 모르겠다. 14, 15, 16살 꽃다운 어린 여자아이가 가난한 살림에 보탬이 되고자 돈을 벌기 위해 고향을 떠났다. 아무것도 모르고 기차 타고, 배를 타고 힘들게 도착한 그 곳은, 지옥이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문제가 역사의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전쟁이 끝나고도 50여년이 흐른 뒤라고 한다. 1988년 일본 남성들의 한국성매매 관광(일명 기생관광) 문제를 논의하던 한 세미나에세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처음으로 제기되었다. 성매매 관광의 역사적 뿌리이며, 정치침탈, 경제침탈, 군사침탈이 일어나는 곳에서 언제든 일어나는 오늘날의 문제임이 역설되었다. 1991년 8월 14일 김학순 할머니는 TV 인터뷰를 통해 본인이 일본군 위안부였음을 처음으로 밝혔다. 이때부터 한명, 두명 피해 생존자 할머니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1992년 1월 8일 수요일, 서울의 일본대사관 앞에서 첫번째 수요 시위가 열렸다.



154페이지 밖에 안되지만, 한장 한장 넘기는게 너무 힘들었다. 나름 많이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이정도일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2000년 12월 여성국제전범법정의 남측 대표 검사로 참여했다고 한다. 그당시 피고로 기소된 히로히토 일황과 옛 일본군 간부 등은 인간의 노예화, 고문, 살인, 인종적 이유 등에 의한 박해 등을 금지하는 인도에 대한 죄를 위반했다고 유죄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17년이 지났지만,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서울시는 위안부 실태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입증 및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 관리사업을 추진했다. 정부가 못한 일을 서울시가 하는거다. 서울시민으로서 참 뿌듯하다. 



김복동 할머니의 인사말. 몸이 많이 불편하셨는데도 불구하고 본인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대통령이 역사를 팔아먹어 지금도 여전히 정부와 싸우고 있다. 아직도 한을 다 풀지 못했다. 1억원 받겠다고 이러는 거 아니다. 우리들도 귀한집 자식이다. 일본 정부의 사죄와 명예회복이 될때까지 싸우겠다.


  

양산에서 부산 - 시모노세키 - 대만 - 광동 - 홍콩 - 수마트라섬 - 싱가포르까지 김복동 할머니의 이야기다.


할머니는 1926년 5월 1일 경남 양산에서 태어났다. 그리 어려운 형편이 아니었는데, 보증이 잘 못 돼서 땅을 읽고, 아버지도 돌아가셨다. 만15세때, 일본사람이 찾아와 데이신타이(정신대)에 딸을 보내야 하니 내 놓으라고 했다. 그사람은 어머니에게 데이신타이는 군복 만드는 공장에 가서 일하는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결국 끌려가게 되었다. 


배를 타고 중국 광동에 도착했다. 위생병원 같은 곳으로 가서 일본 군의관이 성병 검사를 했다. 검사 후 어떤 건물로 갔는데, 거기가 바로 위안소였다. 복도 사이로 양 옆에 방이 주욱 있었는데, 방이 30개는 되었던 거 같다. 그날 밤 낮에 우리를 검사한 군의관이 내방으로 들어왔다. 무서워서 도망쳤으나 곧 잡혔다. 한참을 맞고 나니 얼굴 전체가 감각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이틀날 방에서 나오니 여자들이 저마다 피빨래를 하고 있었다.



홍콩 위안소에서 석달쯤 있다가 싱가포르로 이동했다. 민간에서 외진 곳으로 멀리에서 대포소리가 자주 들렀다. 가끔 산 속 갚은 곳의 군부대로 출장을 가기도 했다. 천막 하나를 임시 위안소로 만들어 놓고 합판으로 칸을 나누어 서너 명씩 들어가도록 했다. 군인들이 하도 많이 들이 닥쳐서 저녁이 되면 다리를 펼 수 없을 정도가 되고 말았다. 


몇 달 있다가 인도네시아 수마트라로 이동을 했다. 어느 날 위안소에 군인들이 오지 않았다. 보름 후 일본 군인들이 빨간 십자가가 그려진 차를 타고 와서 우리를 태우고 떠났다. 그 곳은 제10 육군병원이었다. 그곳에는 우리 같은 여자들이 300명정도 와 있었다. 열 다섯살에 집을 떠났다가 스물 살이 되는 해에 돌아왔으니 5년만이었다. 현재 김복동 할머니는 전 세계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인권운동가로 활동 중이다.



박원순 시장은 인사말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이 원하는 건 복수가 아니라 정의라고 말했다. 일본정부는 10억엔을 출연하고 우리 정부는 화해와 치유라는 이름으로 재단을 만들어 할머니들에게 더 큰 상처를 안겨 줬다. 화해와 치유는 그렇게 되는게 아니고 오직 진정한 사과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남산 통감관저 터 자리에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기억의 터가 새로 조성됐다고 한다. 3·1절이 얼마남지 않았다. 아픈 역사이지만,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서 다녀와야겠다. 어느새 봄이 성큼 다가왔는데, 우리 할머니에게도 새봄이 찾아왔으면 좋겠다. 



원문전체보기 - http://www.overniceonion.com/1122 서울미디어메이트 남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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