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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도시서울

[용산공원 역사인문학 콘서트] 역사속의 용산을 만나다.

[용산공원 역사인문학 콘서트] 역사속의 용산을 만나다.

 

 

 


노오란 샤스 입은~말없 는 그사람이 어쩐지 나는 좋아~♬

 

 

 

중구 남산 아래에 위치한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1961년 데뷔한 가수 한명숙 선생님의 노래가 흘러나왔습니다.
지난 1126() 오후 2, 이곳에서 용산공원이 조성될 지역에 관한 인문학 콘서트가 개최되었는데요.
 
왜 용산공원 '역사와 인문학 콘서트장'에서 한명숙선생님의 노래가 나올까? 궁금했습니다.
일단 용산공원 역사인문학 콘서트 속으로 들어가보겠습니다.

 

 

▲용산의 역사를 찾아서 사진전

 

 

 

 

 

 

▲ 용산 정거장

 

 

  용산8군쇼의 전개와 의미


첫 번째 순서는 이준희 대중음악평론가(kbs 가요무대 자문위원, 남인수 전집 음반기획/제작)새로운 전후음악의 센터, 용산 8군쇼의 전개와 의미라는 주제로 인문학 콘서트를 열었습니다. 

 

 

 

19506.25전쟁이 반발하자 미국 정부는 국제연합군의 일원으로 한국에 군대를 파견하여 미8군 사령부를 설치했습니다. 미군의 파견과 주둔은 미군을을 위한 연예무대를 필요로 하였는데요. 처음엔 미국의 가수들이 와서 공연을 했습니다. 그러나 공연을 위해 준비과정과 비용이 비용대비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것을 인식 하게 됩니다. 그래서 한국인으로 구성된 8군쇼 공연준비를 하게 된 것인데요. 그중 김씨스터즈가 8군쇼에서 굉장한 인기를 끌었습니다. 김씨스터즈는 미국 에이젼시의 눈에 띄어 미국행 제안을 받는데요. 10년간 라스베가스를 주름잡게 됩니다. 처음으로 미국 대중음악에 안착한 대중음악가인 것입니다.. 8군쇼 대상으로 충분히 훈련했기 때문에 미국에 가서도 당대 최고의 엔터테이먼트로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합니다. 드라마와 춤까지 진출했다 하니 당대 인기를 짐작해 볼 만 하죠.
    

 

 ▲ 미8군 부대에 마릴린먼로가 위문공연

 

 

한국 대중음악 해외 진출의 견인차

 

 

 

8군쇼는 미국 이방인을 위한 쇼였죠. 여기서 갈고 닦은 이들이 일반대중 음악에도 들어가, 한국 대중음악 해외 진출의 견인차가 되었습니다.
8군쇼의 음악적 의미는 한국 대중음악의 흐름을 바꿔 놓았습니다. 이에 용산은 핵심적인 지역 역할을 했던 것이죠.

 

 

▲원로가수 윤복희와 패티김

 

 

 역사 속의 용산

두 번째 전우용 역사학자는 역사 속의 용산이라는 주제로 용산이라는 공간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조선시대부터 개항과 일제 강점기를 거쳐 광복 후 용산 일대에서 일어난 다양한 역사의 흔적을 살펴보았습니다.
    

 

 

 

【용산 서쪽에 마포토정농암등의 강 마을이 있는데 모두 서해와 통하여 8도의 배가 모여들게 되었다. 성안의 공후 귀족들이 많이 이곳에 정자를 지어 놀이와 연회의 장소가 되었다.
-조선 건국직후의 용산 지리개관-】
 
서해안 조수간만의 차로 바닷물이 역류하는 물을 타고 한강으로 배가 들어왔습니다. 무역이나 조세곡물이 들어왔는데요. 이로 인해 용산에는 창고가 많이 들어섰습니다.

 

 

전우용 역사학자는 용산은 대립적인 것들이 공존하는 장소라고 이야기합니다.



용산은 산과 강이 함께있다. 이질성을 갖는 것이 공존하고 있다.
용산은 사람이 살았지만 조선 최대의 공동묘지였고
시와 농촌이 만나는곳
객주들의 정부의 힘과 시민사회의 힘이 어우러지는곳
토착문화와 외국문화가 공존하는곳이다.
서로다른 것이 공존하는 용산
창조적인 것이 나오기 좋은 곳이라는 것이다.
공존 역사를 용산주민이 잘 이어받길 바란다.
    


위의 공존 이야기는 용산의 역사 설명후, 전우용 강사의 마지막 간추린 설명이였는데요. 앞서 설명했던 이야기가 짧은글에  모두 표현된듯 했습니다.

 

 

 

▲부대행사로 용산의 역사를 찾아서 사진전이 있었습니다. 김천수 지역사 연구가가 사진 역사속 용산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였습니다.

 

 

 세 번째 시간 노란 샤쓰의 사나이한명숙을 만나다

 

 

 

행사장앞에서부터 흘러 나오던 /노란 샤쓰의 사나이'를 부른 주인공을 직접 만나 볼 수 있었습니다.


 

박정희 시대에 내가 용산에서 세금을 제일 많이 냈다.

 

올해82세로 오랜만에 무대에 오른 한명숙 선생님은. “박정희 시대 용산에서 세금을 제일 많이 냈다. 신성일은 두 번째였다.”며 위트 있는 입담으로 그 시대의 인기를 실감 시켜주었습니다.

 

 

 

세월의 흔적은 한명숙 선생님의 걸음걸와 노래에서도 느낄 수 있었는데요. 조금 불편해 보이는 움직임이였지만, 관객들의 추억을 끌어 올리는데는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한명숙 선생님의 선두하에  '노란 샤쓰의 사나이를 부르며 역사 인문학 콘서트는 막을 내렸습니다.

 

 

 

 

용산구에 위치한 미군기지가 평택으로 이전함에 따라, 서울시는 해당 지역을 시민을 위한 공원으로 조성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이자리가 후대에 어떤 역사로 남을지 궁금한데요.
앞으로 지어질 용산공원이 시민의 소리가 잘 반영된 대중의 쉼터이자 힐링의 장소로 거듭나기를 바랍니다.

 

▲ 시민들이 바라는 용산공원에 대한 한마디

 

                                                                                        서울미디어 메이트 양혜숙기자